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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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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소나 대표님은?

Q. 예술 제본은 조금 생소한데요. 예술 제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예술제본은 서양의 책 문화에서 생겨난 거예요. 우리는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찍어서 나오는 책들만 보잖아요. 그런 걸 제본이라고 부르는데,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다 수작업으로 제본을 했어요. 그런 전통적인 방식을 잇는 걸 편의상 예술제본이라고 불러요.

Q. 예술제본을 배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TV,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고(故) 백순덕 선생님이 작업하시는 순간이 잠깐 나왔어요. 무척 인상이 깊어서 다이어리에 적어 놨었어요. 저는 경영학부에서 정보 관리학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시간 여유가 생겨서 예술제본을 배워볼까 싶었죠.

찾아보니 백순덕 선생님이 현암사라는 출판사에서 예술제본 아카데미 강의를 하고 계셨어요. 두 달 쯤 배우고 있는데 그 강의가 없어진다고 해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렉또베르쏘 공방으로 갔어요. 거기서 5개월 정도 더 배웠죠. 그 즈음에 선생님이 개인전 준비로 일손이 필요하셔서 2002년에 렉또베르쏘에 출퇴근하는 첫 번째 수제자가 됐어요.

Q. ‘이 일을 평생 해야겠구나’라는 확신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예전에는 제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백순덕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예술제본가 자격증을 취득하시고 돌아와서 국내에 처음으로 예술제본을 알리신 분이에요. 예술제본이 생소하니까 경제적인 상황도 열악했죠. 그래도 배워나갈수록 일 자체가 너무 좋은 거예요.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직업이든 취미든 평생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조금씩 환경이 좋아지고 선생님 밑에서 심화 과정으로 5년쯤 배우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도 가르칠 수 있게 됐어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예술제본가가 된 거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손으로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다이어리도 직접 만들어 쓰고요. 지금 보니까 예술제본 과정에는 제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일들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Q. 예술제본을 배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예술제본은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 숙련도를 쌓아야만 하는 작업이에요. 손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타고난 감각이 좋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빨리 배우기 힘들거든요.

유럽에서는 예술제본을 건축에 비유해요. 그만큼 제본이란 게 복잡하고 책의 구조, 책의 물성을 이해하고 체득해야 해요. 제본의 역사는 곧 책의 역사니까요. 책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겼던 문화권에서 예술사조와 함께 발전했던 거죠. 예술제본가는 기술적인 역량과 함께 역사와 문화도 치우침 없이 공부해야 해요.

Q. 책의 장인이 되는 길은 멀고 아득하네요. 국내에도 예술제본가 자격증이 있나요?

프랑스에는 를리외르(예술제본가)라고 하는 국가공인 자격 제도가 있지만, 그건 최소한의 기술을 테스트하는 거예요. 그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도 내가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더 오래 수련을 해야 해요.

사람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요. 왜 자격증을 안 만드냐고요. 우리나라는 대개 협회가 생기고 자격증부터 만드는 문화잖아요. 저는 늘 말씀 드려요. “실력이 자격증입니다”라고요. 저희가 인위적으로 자격증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Q. 공방에서 ‘예술제본학교’를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소개 부탁 드려요.

예술제본학교의 교육 과정으로는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이 있어요. 초급 과정은 8주간 전문적인 도구나 재료 없이 집에 있는 칼이나 가위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노트나 책을 제본해요. 초급을 마치면 2년간의 중급 과정을 할 수 있어요. 고급 과정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죠.

Q. 사람들이 지루함을 못 이기고 금새 그만두는 경우도 꽤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제본이라는 게 겉보기에는 결과물이 멋있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요. 책 한 권을 양장 제본하는 데 보통 3개월이 걸려요. 학생들이 1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2시간 반에서 3시간 작업을 해요. 진도가 아주 더디죠. 성격이 급해서 그걸 못 견디는 분들은 하기 어려워요. (웃음)

예술제본은 60여 가지 공정을 거쳐요. 책을 뜯어서 낱장으로 다 해체하고 그걸 다시 실로 잇고 풀로 붙이고 말려서 며칠 두고, 프레스를 일주일간 눌러놓고 겉 등을 망치로 두들겨서 둥글게 만들고, 표지에 쓸 장정용 가죽을 한 달간 갈고 그사이에 다른 작업을 하면서 가죽 표지 안쪽 판지 표면을 사포로 가는 등 연달아서 할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에요. 특히 중급부터는 호흡이 아주 긴 작업을 해서 초반에 3개월 정도 하시다가 못 참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웃음) 견디시고 즐기게 되면 계속할 수 있어요.

Q. 예술제본 과정 중 대표님이 좋아하는 과정과 싫은 과정은 어떤 게 있나요?

제가 원래 단순 반복 작업을 별로 안 좋아해요. 건축도 건물을 올리기 전에 땅을 고르고 토목공사를 먼저 하잖아요. 예술제본도 그래요. 전체적인 과정은 재미있고 좋은데, 단순 반복적인 부분은 좀 힘들기도 하죠. 초반에 책을 낱장으로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거나 표지 가죽을 반복적으로 한참 갈아야 하는 일이 많지만 익숙해지면 그런 과정들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어요.

Q. 대량 생산되는 제본과는 구분되는 예술제본은 단순한 수제작업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면 그건 북아트의 영역이고요. 예술제본의 가장 큰 목적은 보존성이에요. 책을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냐, 일단은 기술적으로 숙련도 있게 만들어진 책이어야 해요.

예술제본이란 결과물은 물론, 만들어진 과정까지도 통칭하는 것이거든요. 어떤 제본가는 자신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넣어서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제본가는 창의성보다는 뛰어난 제본 기술로 전문적인 보수나 복원 활동을 할 수 있어요.

Q. 지금까지 하신 제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건지 소개해주세요.

몇 년 전에 한 노신사가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을 가지고 오셨어요. 독일 유학을 하실 때 무리해서 스물 몇 권짜리 괴테 전집 초판본을 사셨대요. 그 전집에 <파우스트>가 두 권으로 실려 있었는데 한 권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파우스트>가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볼 책이기 때문에 의뢰하시는 거라고 하셨어요.

예술제본의 가치를 잘 아는 분이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주문 하셨어요. 처음에 책을 뜯을 때 정말 손이 떨리더라고요.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아무도 없을 때만 작업하곤 했어요. (웃음)

Q. 대표님처럼 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장인이 된다는 건 굉장한 일인 것 같아요. 슬럼프나 위기 상황은 없으셨나요?

지난 2008년에 백순덕 선생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셨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전까지는 선생님께서 이끄시는 방향대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내가 선생님 대신 공방을 운영할 수 있을까? 다른 학생들을 이끌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서 심각하게 ‘그만둘까’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처럼 렉또베르쏘에서 오래 함께 해오신 분들과 함께 해나가자고 결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저는 ‘밥 안 굶고 빚 안 지면 된다’라고 생각해요. 물론 빚을 질 때도 생기지만(웃음),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면 스트레스 받잖아요. 제가 자부하는데, 일 때문에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제가 즐겁고 공방에서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무척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작업하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요?

제가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철학서를 좋아해요. 괴테도 좋아하고 니체도 좋아해요. 우리나라엔 아직 없지만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유럽에 가서 정말 좋은 종이로 만든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찾은 거예요. 그런데 불어나 독어로 되어 있어서 읽을 수가 없는 거죠. 만약 그런 구조나 질감을 가진 괴테나 니체의 책이 한국어로도 나온다면 정말 기쁘겠죠. 또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들이 있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이 선물해주신 책이나 엄마가 물려주신 책들이요. 잘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는 멋지게 예술제본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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